히마와리 아쿠아 애프터 (ひまわり アクアアフター)
<히마와리>의 아쿠아 루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팬디스크 히마와리 아쿠아 애프터.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아쿠아와 러브러브 한 일상을 보내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 이렇게 비틀린 두 사람이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이지 아쿠아 루트 이후의 이야기에 가장 걸맞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후일담이 두 사람에겐 더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고-가 밝힌 이 작품이 태어난 이유가 PSP판 음성 수록 이후 스태프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아쿠아 엔딩 이후에 이 녀석 둘이 분명 헤어졌을 거 같아'라는 한 스태프의 말에 이 작품이 태어났다고 한다. 듣자마자 납득이 갔다. 그래, 이 녀석들은 계속 싸우고 화해하고, 헤어지고 다시 합치고를 반복할 것 같은 커플이라고. 아쿠아 애프터의 이야기는 딱 그러하다. 이 이야기는 마냥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본편만큼, 본편 이상으로 우울해질 것 같은 전개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 두 사람다운 이야기임을 어쩌겠는가.
팬디스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 이 작품은 본편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팬디스크라기 보단, 후일담이나 후속작에 가까운 느낌. 정말이지, '팬을 기쁘게 하기 위한 요소'는 거의 없다. 물론 이 작품의 팬은 이런 이야기에 기뻐하는 변태들일게 분명하기 때문에 다들 만족스러워하겠지만. 본편에서 다하지 못한 루나 바이러스 이야기, 그리고 회수하지 못한 복선들과 설정들을 말끔히 해결한다. 대표적인 예가 다이고와 모미지의 이야기, 아마미야 가의 이야기,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루나 바이러스 보균자 등에 관한 이야기.
크게 두 가지 에피소드로 나뉘는데, 2051년도에 진행되는 요이치 시점의 이야기와 2052년도에 진행되는 아쿠아 시점의 이야기. 전자의 경우는 '팬디스크'라는 말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로,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요이치와 아쿠아가 틀어졌다가 화해하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쿠아가 임신한 이후의 '어머니로서의 아쿠아'를 다룬 이야기. 이 부분은 상당히 무거운 전개에다 본편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파트라 팬디스크라기보단 본편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들었다. 물론 후자가 더 마음에 들었지만.
첫 번째 이야기는 너무나도 두 사람다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조금은 웃었다. 본편 엔딩 직후 여행지에서 대판 싸우고 갈라섰다 다시 붙었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아빠 미소가 나왔음. 자신으로 인해 망가져간, 죽어간 사람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아쿠아 입장에선 자기가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과 그런데도 요이치의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장면들은 좀 가슴 아팠다. 이 두 사람이 내린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쿠아의 성장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머니로서의 아쿠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사실 어머니라곤 하지만 아직 성인이라고 부르기도 뭐 한 나이에 많은 상처를 받고, 비틀린 그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어머니 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보여주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최후에 아쿠아가 내린 결정과, 아사히에게 건네는 말은 정말 인상 깊었음.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더 '어머니 다운' 결정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코스모스의 이야기가 약간 불완전 연소로 끝나버렸다는 점. 그리고 개인적으론 본편 이후 아스카 이야기도 좀 더 다뤄줬으면 좋았다 싶었는데, 히마와리는 여기서 끝이라는 점이 많이 아쉽다. 코스모스의 경우는 굳이 가족을 이루지 않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주인공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해줬으면 싶었다. 아스카의 경우는 아스카 엔드 자체가 후속작이 나올 것 같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매듭지어져서 기대했는데 끝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좀 아쉬움. 물론 세컨드 시나리오에서는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방향으로 제시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쿠아라는 캐릭터는 참 애착이 가는 캐릭터다. 부모인 고-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그녀는 제멋대로고, 자기중심적이고, 자의식 과잉이고, 울보고, 외로움을 타고, 허풍쟁이에, 겁쟁이에, 약한, 어린 여자아이.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마이너스인 요소가 잔뜩 있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걸 매력으로 승화시켜 버렸다는 게 참 인상 깊음. 미워할 요소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가 없는 소녀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것으로 히마와리의 이야기는 끝났다. 사실 더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세계관을 다른 이야기로 전개해주는 것으로 위안 삼아야지. 좋아했던 시나리오 라이터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최근 많이 봤는데, 그런 와중에도 신작을 내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고-를 보고 있으면 절로 사랑할 수밖에 없더라. 아일랜드가 정말 고평가를 받고 있는데 부디 히마와리 이상으로 멋진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여행하는 동안 쭉 그런 느낌이었다. 정말로 몇번이나, 몇번이나 싸웠다.
아쿠아를 많이 상처 입혔다. 아쿠아를 수 없이 울렸다.
그런데도,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쿠아를 좋아한다.
아쿠아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싸운 수 만큼 화해해서, 지금도 두 사람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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