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소나 5(ペルソナ5)
근 몇 년간 일본식 RPG는 서양식 RPG와 어드벤처 게임에게 무참히 얻어맞아 왔다. JRPG의 쌍두마차 중 내수에서 특히 강력한 드래곤 퀘스트를 빼고, 서구권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지던 파이널 판타지의 거듭된 실패와 서구권 게임의 약진. 그리고 기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 일본 게임계로 인해 최근 몇 년은 그야말로 일본식 RPG, 아니 일본 게임계의 암흑기 그 자체였다. 그 암흑기 중에서도 선전하는 몇 안되는 프랜차이즈가 있었으니. 바로 페르소나 시리즈다.
아틀라스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페르소나 3, 그리고 프랜차이즈 사상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둔 페르소나 4. 그러나 이런 연이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외적 요인으로 아틀라스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틀라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했는데 세가의 인수로 날개를 달고 다시 나타났다. 기적적으로 발표된 페르소나 5는 수많은 JRPG의 팬들과 페르소나 시리즈 팬들에겐 그야말로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매 시리즈마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페르소나 시리즈답게 이번 작품도 정말 많은 부분에서 발전했다. 스타일리시한 UI, 단조로웠던 던전─타르타로스, 심야TV─에서 벗어난 퍼즐 & 잠입 액션식 던전 구성, 약점 찌르기에 의존했던 보스전 대신 새로운 보스 공략 방법, 인연의 힘을 스토리가 아니라 게임상에서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코옵 어빌리티, 다시 부활한 악마 회화 시스템 등. 작은 부분에서 큰 부분까지 모두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새로운 던전 공략법이었는데, 기존 타르타로스와 심야 TV의 던전은 단순히 보스를 공략하기 위한, 캐릭터의 성장을 위한 장소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퍼즐 기믹을 많이 도입하여 던전을 돌파해나가는 것 자체에 성취감을 부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후반부 몇 팰리스의 경우 이게 너무 과해서 지친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이야기 부문에서도 페르소나 3 '구세주 신화', 페르소나 4 '일본 신화'에 이어서 어떤 신화를 모티브로 차용하느냐 유저들 사이에서도 추측이 많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나온 건 놀랍게도 '괴도 이야기'였다. 마음을 훔치는 괴도라는 컨셉, 그리고 자유와 반역이라는 테마. 기존 페르소나 시리즈의 틀은 유지하면서 새로운 페르소나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것을 성공한 것은 굉장히 감명 깊었다.
또 페르소나 3 이후로 쭉 유지하고 있었던 쥬브나일 RPG라는 컨셉은 이번 작품에서 더 뜻깊게 다가온다. 기존 페르소나 시리즈들은 사회보다는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 등장하고 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여정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었는데 반면 이번 작품은 노골적으로 일본 사회─넓게 보면 현대 사회─를 저격하고 있다. 일본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 아직 어린 주인공과 동료들의 실수, 나태한 대중들. 이런 사회 속에서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주인공과 동료들의 이야기는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종 보스와 엔딩은 페르소나 5만의 독특함을 지켜내면서, 기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집합적 무의식'과 적대, 인연의 힘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시리즈의 컨셉과 페르소나 5의 컨셉을 잘 어우러지게 융합시킨 것 역시 좋았던 점이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페르소나 3와 구성은 같으나 대비되는 점이 많은데, 가령 위로 향하는 타르타로스와 아래로 향해는 메멘토스의 대비나, 최종 보스가 여신전생의 카오스에 해당하는 페르소나 3, 그리고 로우에 해당하는 페르소나 5. 최종 페르소나가 구세주였던 페르소나 3와 대악마인 페르소나 5라던가. 이런 부분도 재미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아쉬운 면도 분명 존재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역시 캐릭터다. 전작 페르소나 4에서는 각 등장인물의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름답지 않은 면을 부각 시킨 이후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만들어 성장하는 이야기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유스케를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페르소나 각성하는 계기가 전작에 비하면 다소 심심한 편이고, 극이 진행되면서도 각 캐릭터의 성장보다는 괴도단 자체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보니 캐릭터성 면은 전작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또한 1회차 70시간을 상회하는 막대한 분량은 분명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그 시간이 모두 밀도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히 아쉽다. 니지마 팰리스를 넘어 시도 팰리스 즈음에서부터는 서서히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는 시도 팰리스의 던전 구성 자체가 피로감을 느끼기 쉬운 구성이었던 점도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계속 공회전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본작 최대의 반전 이후로 전개되는 최종 보스 전 부터는 다시 탄력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아쉬움이 덜한 것일 뿐, 이야기, 그리고 게임 진행 호흡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해결되지 않은 요소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확장팩을 염두에 둔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 역시 다소 아쉬운 부분.
많은 비판을 받는 최종전 전개와 연출은 개인적으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편이다. 좀 편의주의적인 흐름이긴 했고, '괴도단'에 대한 이미지가 순식간에 전환되었다는 부분도 분명 아쉽다. 어느 의미에서 보면 대중들은 그 나태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단순히 새로운 의존 대상인 괴도단으로 방향만 전환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디렉터가 의도한 바는 대중들의 나약함과 동시에 그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를 바꿔낼 수도 있는 대중의 강력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단 한 명의 히어로가 아닌, 대중의 힘이 필요하니까. 그 대중의 힘을 모아 만들어 낸 것이 반역의 총탄이라는 점은 굉장히 의미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대중이 가지는 나약함과 강력함을 동시에 표현한 것 때문에 개인적으론 만족하며 받아들였던 장면이다.
인간에겐 세계를 바꿀 힘이 있어.
지금은 아주 잠시 잊고 있을 뿐….
아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플래티넘 트로피 달성까지 약 100시간가량 걸렸는데 그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정말 만족스러운 작품. 연이은 실패로 인해 갈 길을 잃어버린 JRPG에게 있어선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준 작품이다. 사회를 향한 반역의 총탄을 쏘아올린 작품이자, 동시에 침체기였던 일본 게임계에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작품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멋진 게임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푼 확장팩도 근 시일 내로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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