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테미스 블루 (アルテミスブルー)
처음보단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단 세 번째가 더 사랑스러운 작품이 있다. 내겐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 <아르테미스 블루>다. 사실 초회 플레이 때는 좋은 작품이긴 했지만 매우 좋다 수준까진 아니었는데, 이번에 다시 플레이하면서 작품에 대한 인상이 훨씬 좋아진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선 그 흔한 감상이나 리뷰조차 제대로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묻힌 작품이라 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설정과 배경에 있다. 모종의 이유로 지구에 닥친 대변화로 인해 고도 500ft(150m)이상 비행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연간 사고율 20%에 육박하는 위험한 업계인 항공업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설정 하나가 수많은 매력을 갖고 온다. 첫 번째는 서브컬처 주류 배경인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신선함을 얻을 수 있고, 두 번째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성인인지라 캐릭터들이 다양한 매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비행기와 우주라는, 타오를 수밖에 없는 소재를 선정한 것으로 극의 분위기도 불타오른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바로 캐릭터다. 이 작품의 캐릭터는 다른 게임이나 소설에서 보는 캐릭터들과는 좀 다르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사회 초년생 여성'이다. 이는 에로게에서는 다소 독특한(능욕계 제외) 점인데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은 H신에서 정말 정말 잘 살렸고(순애게임에도 불구하고 H신이 꽤 독특하다.) 사회 초년생이라는 점은 성장 이야기를 더욱더 맛깔나게 만들어 준다. 부조종사(Co-pilot)로 입사한 하루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전형적인 것 같지만, 묘하게 비틀어버린 뒤틀린 왕도를 따르는 주인공인지라 여러모로 볼 거리가 많다.
또한 이 작품의 조연들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하루'의 성장 이야기임과 동시에 조연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많은 사연을 가진 기장(이자 또 다른 주인공) 카츠라 케이마와 그의 동료인 아키코, JJ 역시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후반부엔 오히려 이들의 이야기에 무게를 더 두기까지 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잘 만든 작품은 주인공 원맨쇼가 아닌, 조연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 딱 그격. 그들은 기본적으로 '어른'이지만, 아직 '아이'에 가까운 하루와 만나 생활하는 것으로 잃었던 것들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한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고, 어른이 틀을 깨버리고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한 작품에서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야기의 경우도 꽤 준수한 편이다. 개인적으론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아쉬움─더 불태울 수 있었는데 하는─이 남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울고 웃을 수 있는 좋은 이야기다. 꿈, 노력, 좌절, 극복과 같은 요소들은 물론 가족애나 동료애, 꿈과 사랑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이야기 기법 중에 인상 깊은 점은 '체호프의 총' 원칙을 아주 잘 지키는 작품이라는 점. 작품에 군더더기가 없다. 돌이켜보면 모든 내용들이 복선으로 착실하게 깔려있는 작품이다.
구성의 경우 각각 독립된 에피소드 여섯 개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는 구성이다. 각 사건들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사건을 겪음으로 인해 새롭게 성장하고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 특히 이 에피소드들은 각각의 에피소드 자체의 완성도도 괜찮은 편이지만 무엇보다도 이야기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필요 없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군더더기가 없는 작품. 그래서 플레이가 전혀 루즈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역시 마지막 에피소드인데, 전개가 다소 생뚱맞다는 점과 '하루'의 이야기가 다소 부진했다는 점이 아쉽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특히 모 캐릭터 하나가 캐릭터성이 확 변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극이 좀 생뚱맞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좀 더 다듬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하루의 경우도 좀 더 조명하고, 좀 더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원래 그런 성격의 캐릭터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굉장히 즐거운 작품이자, 매력적인 성장 이야기로 내 취향에 딱 맞다. 무엇보다도 비행기와 우주라니 불타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 소재다. 에로게는 모처럼 나이 리미터를 제한할 수 있는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학생'이라는 틀 안에 스스로 갇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얼마나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잘 들어, 앨리슨.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주는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해.
자신을 위해 산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요구받지 못한 사람의 억지야.
"도망쳤다고, 생각하지 않는건가요?"
"도망? 도망이라, 하하하. 스프링 걸,
사람 누구든지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
결국 도망친 그 앞도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에.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추하더라도, 그게 자기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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