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봇치 더 락(ぼっち・ざ・ろっく!)
분기 패권작으로 워낙 명망이 높아서 호기심이 가던 차에 연말에 시간이 꽤 많이 나게 되어서 정주행한 작품. 끝까지 본 결과, 분기 패권작은 괜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고 나아가 2022년이 채 가기 전에 다 본 것이 꽤나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4컷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은 만들기가 꽤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충분히 원작을 초월한 작품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쉽게 짐작이 갈 정도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캐릭터, 고토 히토리─이하 봇치─의 압도적인 매력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원작 만화에서 부터 이 작품만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 어드밴티지가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밴드라는 외향적인 요소의 정점에 있을 것 같은 소재에 아싸 중의 아싸인 봇치를 믹스한 것에서 오는 아이러니가 굉장히 재미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현대에는 더 이상 각광받지 못할 것이라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성장 이야기까지 재미있게 녹여내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작품이었을 텐데 애니메이션 화를 이렇게까지 대단하게 해냈으니 이게 분기 패권작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써 가지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연출이었다. 단순히 작품 내 일정 부분의 연출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봇치의 캐릭터성을 살려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연출이다. 온갖 방식의 연출로 봇치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고 더 나아가 망가뜨린다.

평범한 미소녀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그 캐릭터가 가진 귀여움과 매력을 최대한 어필하는 쪽으로 제작되는데, 이 작품은 봇치가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작품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다. 작중 2번의 라이브를 제외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봇치의 망가지는 모습에 동화가 집중되어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작품을 재미있게, 나아가 봇치라는 캐릭터를 귀엽고 개성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낸다. 보는 내내 즐거워지면서 봇치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어 러닝 타임 내내 즐거운 마음만 가득했다.

나아가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거나 드물게 사용되는 다양한 방법의 연출을 이용해 보는 내내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요소 또한 좋았다. 흑백 데셍 배경에 귀여운 데포르메 캐릭터를 얹는 간혹 보이는 연출부터 현실의 장면을 작품 내로 끌어들이고, 실사에 근접한 그림체를 활용하거나 나아가 꽤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이트로프까지. 정말 각양 각색의 방법을 활용해 봇치의 심리나 상황을 연출하면서 작품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다.

이런 요소들이 봇치를 더 매력적이게, 작품을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시청자에게 쉴 틈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개그 애니메이션으로도, 성장 애니메이션으로도, 밴드 애니메이션으로도 작품을 즐기게 만들 수 있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서사면에서는 역시 아주 조금씩이지만 성장해 나가는 봇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의 작품 트렌드는 완성형 캐릭터가 극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서사가 인기였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봇치는 기타 실력은 프로급이지만 인간으로서의 능력치가 0에 수렴하다보니 밴드 내에서도 기타 실력을 제대로 못 내는 등 자칫 잘못하면 발암 전개를 낳을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개그로 승화시키고 작품이 진행되면서 착실히 성장해나가는 서사는 최근 인기작에서 맛보기 어려운 중요한 요소였다. 역시 성장 이야기는 매력적이구나라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렇구나…! 처음부터 적 같은 건 없었어…. 내가 멋대로….'
'그래. 여기 있는 , 네 연주를 듣고 싶어서 멈춰서 준 사람들이야.'
친구 하나 없는 사회성 제로, 대인 기피에 가까운 성격의 봇치는 우연히 밴드에 가입하게 되어서 오디션, 버스킹, 라이브, 학원제 라이브와 같은 '밴드 활동'을 통해서 인간으로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성장하는 모습은 그동안 과격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 봇치와의 괴리감을 통해 더 큰 감동을 시청자에게 안겨준다. 관객을 적으로 보던 봇치가 버스킹을 통해 시선을 바꾸고, 라이브를 통해 오히려 결속 밴드를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고, 학원제 라이브에 와서는 당당히(?!) 무대 위에 서고 돌발 상황에도 마냥 굴하지 않고 대처해내는 성장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역시 7화의 버스킹과 8화의 첫 라이브 공연이었는데 버스킹 시퀀스는 봇치가 처음으로 무대에 대한 공포심을 조금이나마 극복해내는 모습을 감동적인 멘트로 잘 그려냈다. 8화의 라이브 공연은 아마 초보 밴드라면 누구나 거쳐갔을 '긴장감으로 인한 실수의 누적'을 다름 아닌 봇치의 애드리브로 다른 멤버들을 부활시켜 극복해내는 명장면. 나아가 8화의 마지막은 니지카의 꿈과 함께 작품의 타이틀을 언급해내는 명장면으로 장식해서 가히 최고의 에피소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에서 봇치를 지지해주는 니지카, 료, 이쿠요도 제각각의 고민과 성장을 보여주며 매력을 뽐낸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보여주어서 성공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자격은 모두 갖춘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과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개그면 개그, 감동이면 감동, 귀여움이면 귀여움. 그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은 훌륭한 작품이었다. 수성의 마녀, 엣지러너에 이어서 올해 보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의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작중 니지카의 말을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자. 나도 계속 이어서 보고 싶다. 봇치 더 록을.
그래도 난, 확신했어!
봇치가 있다면 꿈을 이룰 수 있겠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잔뜩 보여줘. 봇치의 락을.
봇치 더 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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