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天気の子, 2019)
이것은,
나와 그녀만이 알고 있는,
세계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
<너의 이름은.> 이후 3년, 신카이 마코토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 신카이 감독 특유의 감정선과 플롯으로 인해 호불호가 매우 강한 작품을 많이 제작하다가 대중성을 가진 작품을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공전절후의 히트를 치게 된 <너의 이름은.>이었다. 그렇기에 이후에 어떤 작품이 나올까 기대가 참 많았다.
작품을 보기 전에 다양한 평가를 접할 수 있었는데, 대체로 <너의 이름은.>보다는 못하다는 평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은 잘 만든 작품이지만, 개인적인 기호로는 오히려 불만족스러운 점이 많았는데 관람이 끝난 지금은 오히려 <너의 이름은.>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되었다.
기본적인 플롯은 전작과 유사하다. 보이 밋 걸의 형태를 가진 작품인데, 여기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곁들여지고 나아가 소년과 소녀가 서로 엇갈리게 되고 이를 극복한 후 재회한다는 플롯은 전작에서 활용했던 <너의 이름은.>과 아주 유사한 형태다. 하지만 여기에 가장 극적으로 달라지는 요소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것은 <날씨의 아이>가 세카이계 느낌이 강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전작 역시 세카이계 요소들이 들어있지만, 그것이 극을 지배하는 요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날씨의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세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 드러났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그 영향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날씨라는 것이다.
날씨가 인간의 감정에 좌우하는 바는 크다. 맑은 하늘과 우중충한 하늘, 비와 눈. 하늘의 모습이 바뀔 때마다 그 날의 기분이 쉽게 달라진다. 비가 오는 날은 우울하거나, 맑은 하늘에는 괜히 기분이 들뜬다거나. 이런 날씨를 소재로 <날씨의 아이>는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흐린 도쿄의 하늘을 그려낸다.
신카이 마코토의 별명은 빛의 마술사였다. 빛과 색채를 잘 다뤄서 생긴 별명인데, 이번 작품은 오히려 그의 특기가 극단적으로 억제되어 있다. 극중 도쿄의 하늘은 시종일관 우중충하고 비가 내린다. 그리고 이야기상 필요한 부분에만 빛과 색채를 띄게 만드는 것으로 오히려 그의 특기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동시에 맑은 하늘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을 관람객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는 등 자신의 장기를 감추는 것으로 오히려 그것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
주인공인 호다카는 고향인 섬을 떠나 도쿄로 홀로 오게 된다. 그런 호다카에게 도쿄는 너무나도 매서웠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결여된 시대의 상징인 도쿄에서 호다카는 계속 방황하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와의 만남은 그의 세상을 바꾸었다. 함께 <맑음 여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워진다.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은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의 가사 대로, 이 작품의 메인 테마 역시 사랑과 인연이다. 이 인연을 통해 호다카는 더 이상 도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현실이 그들에게 닥친다. 가출 소년이자 불법 총기 소지자인 호다카와 아동 보호 대상인 히나와 나기에게 어른들의 관심이 따라 붙는다. 이 장면들에서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만 관심을 두는 어른들과 히나를 구하러 기찻길을 달리는 호다카에게 일반 시민들은 비웃음과 멸시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가 가지는 삭막함과 타인에 대해 공격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주제의 중요성을 더 부각시킨다.
체념한 자와 현명한 자만이 승자인 시대, 어디에서 숨을 쉴까.
지배자도 하느님도 모르는 척만 해.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을 거야.
용기나 희망이나 인연과도 같은 마법을 쓸 일도 없이 어른들은 눈을 돌려.
그럼에도 그날의 네가 지금도 아직 나의 모든 정의의 중심에 있어.
호다카에게 '어른이 되어라'고 이야기하는 스가 케이스케를 통해 이 주제는 더욱 직설적으로 전달된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가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하며 한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맑은 하늘을 되찾고 싶다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런 현실에 아랑곳 않고 순수히 한 사람만을 그리워하는 호다카의 모습을 보면서 그 또한 다시 순수함이 깨어나 호다카를 돕게 된다.
극 중 초반, 갈등을 간단히 해소해버리는 권총으로 인해 히나와 갈등을 겪었던 때와는 달리 클라이맥스의 호다카는 이를 내던지고 오직 히나를 향한 사랑과 많은 사람들─나츠미, 케이스케, 나기─과의 인연의 힘만으로 자신을 억누르는 현실을 극복하고 그녀를 구할 결심을, 세계를 바꿀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 괜찮아.
맑은 하늘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해도 좋아.
나는 푸른 하늘보다 히나가 더 소중해.
날씨 같은 건 계속 미쳐 있어도 돼.
그리고 이 작품의 결말. 개인적으로는 <너의 이름은.>과 가장 다른 점이면서, 가장 만족했던 부분이다. 기적처럼 다시 재회했던 <너의 이름은.>과 달리 이 작품은 비교적 현실적인 결말을 맞이 한다. 기적의 힘을 잃은 히나와, 평범한 청년인 호다카, 그리고 수몰된 도쿄. 그런 기적 따윈 없는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이 재회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미래를 긍정하는 모습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전해 준다.
이러한 플롯은 현대 사회에서 청년층이 가지는 어떠한 불안함을 해소해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와 갈수록 무거워져만 가는 책임. 그런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전해준다.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어.
스가를 비롯한 어른들은 사람을 보지 않고 현실을 바라보며 자신의 선택이 세상을 크게 바꾼 것이 아닐까 염려하는 호다카에게 세상을 변화 시키지 못했으니 자만하지 말라는 심심한 위로를 건네지만, 그 호다카는 힘을 잃어도 세상이 맑아지기를 기도하는 히나를 보며 자신의 선택이 역시 세계의 형태를 바꾼 것이라고 믿는다.
<날씨의 아이>와 같은 재해 현장에서 물자와 같은 현실적인 지원 역시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것은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우중충한 현실을 바꾸는 것은 누군가를 희생하는 현실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아니라 바로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모여 이뤄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실에 순응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현대에서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존재한다.
히나 씨, 우리들은…
분명 괜찮을거야!
분명 아쉬운 점은 있다. 다소 부족한 점이 있는 개연성과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극단적인 소재(총기 등), 나아가 당연한일을 수행하고 있는 기성 세대(경찰, 아동보호센터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분명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국내 개봉 자막 면에서도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과도한 의역으로 인해 본래 메시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시킨 몇 몇 장면은 여전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 점을 메우고도 남는 음악과 영상, 그리고 메시지가 있었다. 사랑과 용기, 인연과도 같은 단어가 오글거리는 무언가로 치부되는 현대에서 이런 '오글거리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날씨의 아이>에 아주 커다란 기적은 없다. 히나를 구하기 위해 도쿄는 수몰되었다. 그러나 미래가 분명 흐리진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의 재회를 축복하는 마지막 장면의 맑아져 오는 하늘처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들만의 맑은 하늘을 찾아낼테니까.
지금부터 하늘이 맑아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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