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코 러브 스토리(たまこラブストーリー)
모티브나 클리셰는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작품들에 이어 그것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모티브나 클리셰는 작품을 수놓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이고, 이 모티브나 클리셰를 얼마나 활용하느냐, 얼마나 변주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신선도가 달라진다.
흔히 뻔하다고 불리는 작품은 이런 모티브와 클리셰를 과도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흐르는 이 시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신선도이고 새로운 이야기는 각광받고, '뻔한 이야기'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정말 뻔한 이야기는 재미없는, 가치 없는 이야기인 걸까?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바로 이런 뻔한 작품에 속한다. 작품 내에서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로맨스 중에서도 왕도 중의 왕도인 플롯을 사용하고 있고, 장면이나 연출에 큰 독특함은 없다. (야마다 나오코의 집착에 가까운 '발짓'을 통한 심리 묘사를 제외한다면) 하지만 이 작품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그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이 작품이 뻔하게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새로운 것은 없지만, 대신 흔한 요소들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히 잘 활용하였다. 왕도라는 건, 많이 사용되는 클리셰나 모티브라는 건 결국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보장된 도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잘만 사용한다면 '뻔한 작품'이 아니라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걸 충분히 잘 수행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 바로 그것이다. 무척 편안하다. 귀여운 캐릭터와 이상적인 인간관계, 아름다운 세계. 그 속에서 태어나는 격렬한 사랑이 아닌, 다소 심심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사랑 이야기. 이 모든 평범함을 모아 잘 조합하는 것으로 편안하게, 하지만 즐겁고 행복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러닝타임 내내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나 이 작품은 내가 좋아 죽는 소꿉친구를 메인 캐릭터로 배치해두었는데,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소꿉친구들이 무늬만 소꿉친구인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의 경우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충실히 소꿉친구의 매력을 살려냈다. (물론 러닝타임의 한계상 아주 흡족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도구는 역시 실 전화기. 어린 시절이라는 키워드를 바로 연상시킬 수 있을뿐더러 소통이라는 역할까지 수행해내는 멋진 아이템이다. 모치조의 어머니가 타마코에게 실 전화기를 건네주며 '이걸로 괜찮아? 새로 만들어 줄까?'라고 묻는 말에 '아니요, 이게 좋아요'라고 대답하는 장면 역시 '소꿉친구'라는 느낌을 제대로 살려준 장면이었다.
특히나 여기에 히로인 타마코가 공중의 물건을 잘 못 받는다는 설정을 도입하고, 배턴부의 활동으로 이를 계속 상기시킨 후에 단 한 번도 배턴을 받아내지 못하다가 마침내 페스티벌에서 요령을 체득하고 마지막에 실 전화기를 받아내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두 가지 설정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장면을 하나 만들어 낸 셈.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페스티벌에서도 실패하고 마지막에 성공하는 것이 더 찡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또한 전반부를 주인공인 모치조 시점으로, 후반부를 히로인인 타마코 시점으로 구성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전반부에 모치조의 마음을 모두 다 드러내버리고, 후반부에는 타마코의 심경 변화에 모든 것을 올인했기 때문에 마지막의 그 씬이 더 두근거리지 않았을까.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은 엔딩 부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론 '모치조, 나!'로 끝내는 쪽이 더 맛이 살지 않았을까 싶다. 검은 화면으로 페이드아웃한 뒤로 한 마디 덧붙인 것과 그 이후의 씬을 잠깐 보여주는 쪽도 나쁘진 않았는데, 그래도 역시 마지막 그 한 마디는 하지 않는 게 더 짠하게 남지 않았을까.
귀여운 캐릭터와,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블링 블링한 작품이었다. 러닝 타임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훌륭한 힐링 애니메이션. 잘 만든 왕도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아주 멋진 사례였다.
젊음이란, 서두르는 것.
한 스푼의 설탕이 녹는 것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후회의 쓴맛은, 무언가를 했다는 증거.
하나하나 맛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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