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心が叫びたがってるんだ。)
사실 영화관은 자주 가는 편도 아니고, 최근엔 러브 라이브, 아이마스, 괴물의 아이 모두 걸렀지만 기분도 꿀꿀하고 분위기 전환 겸 + 드라마라는 장르를 사랑하는 내게 충분히 어필하는 시놉시스로 인해 오래간만에 영화관에 들러서 본 작품이다. 덕분에 기분 좋은 2시간을 보냈다. 제작진의 '전작'으로 불리는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경우 괜찮은 작품이지만 조금 미묘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지라 이번 작품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갔는데 아노하나 쪽보다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주제와 테마는 「말(言葉)」이다. 이 말이라는 테마를 말을 잃어버린 소녀 <나루세 준>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말의 날카로움과, 말의 따뜻함을 모두 담은 '말' 그 자체를. 주제도 아주 독특한 건 아니지만 매력적이었는데, 이걸 '말을 잃은' 캐릭터로 풀어낸다는 점이 더더욱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나루세 준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몹시 매력 있는 캐릭터지만, 그것 때문에 훨씬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루세 준이 어떤 경위를 거쳐 '말'을 잃는지부터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빛에서 나온, 순수한 말이 의도치 않게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장면에서. 이 작품의 방향성은 그곳에서 결정된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부제처럼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추악한 말과, 추악한 세상 역시 같이 그려낸다. '나루세 준'이 받는 차별, 그리고 모멸의 말들. 극중 초반부터 캐릭터들은 모멸의 말로 다툼을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엇갈려서, 그 상대를 오해하게끔 하는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부 활동 내 정치질, 뒷담화, 막말, 성희롱, 거짓말. 그리고 사랑의 말, 격려, 응원의 말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러닝타임 모두를 이런 말들로 구성하고 있다. 흔히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 세상만을 그려낸다'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이런 어두운 세상 또한 조명한다. 바로 이 점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첫 번째 멋짐이다.
또한 이 작품의 구성은 굉장히 취향이었다.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은 꽤 긴 시간이지만, 그동안 쓸모없는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주 사소한 장면조차 캐릭터의 마음을 드러내는 데, 관계를 드러내는 데, 이후의 전개를 암시하는데 사용했다. 특히 인물들 간의 관계 설명의 거의 대부분을 아주 작은 장면들로 구성한 점이 인상 깊었는데, 가령 미약한 홍조나 눈빛의 떨림이나 시선의 방향, 작은 손짓, 아주 약간의 머리카락의 흔들림까지. 이런 작은 점들이 모여서 후반부의 감정이 넘쳐흐르는 것을 표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런 장면들을 놓친다면 후반부의 전개를 따라가기 어렵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리고 메르헨 풍의 작화 컷을 사용한 심상 세계, 그리고 '달걀'을 사용한 여럿 연출들이 인상적이었다. 메르헨 풍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위기이고, 달걀 연출 중에서도 달걀이 깨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소절이 절로 떠오르던 장면. 이것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두 번째 멋짐이다.
이 작품이 만족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나루세 준>이다. 캐릭터의 존재 의의부터 극을 이끌고 나가는 능력까지 뭐 하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말'이라는 주제를 대표하는 캐릭터이자, 극 중 분위기 메이커. 말도 못하는 애가 어떻게 분위기를 만드냐고? 보면 안다. 이 작품은 나루세 준 없이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수도 없었던 작품이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일상적인 장면을 감상자를 미소 짓게 하여 이끌고, 작품을 무겁게도, 가볍게도 만드는 포지션에 있다. 사랑스러움과, 애절함과, 웃음을 가득 담은 그녀가. 말을 하지 못하지만, 누구보다도 말을 많이 하는 그녀가. 어두워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밝은 그녀가. 올해 만난 캐릭터 중에서도 세 손가락으로 당당히 꼽을 수 있을만한 캐릭터였다.
플롯은 사실 특별하지는 않다. '드라마'에서 플롯은 정말 중요하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플롯은 굉장히 왕도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과하게 표현하자면 약간 '진부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런 진부함조차도 멋진 작품이었다. 왕도가 왜 왕도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까. 단순한 플롯을, 연출과 캐릭터의 힘으로 이끌고 나간다. 그것이 모두 폭발하는 것이 마지막 뮤지컬의 씬. 모두가 뻔히 예상했지만, 뻔히 당할 수밖에 없는 장면. 특별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NG 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드라마를 원한다면 동그라미를 그려주고 싶었던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마음에 쏙 든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중반의 전개. 전반적으로 감정의 굴곡이 크지 않게 진행되는 작품인지라 중후반부의 낙차는 생각보다 뼈아팠다. 특히 지적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리한 로맨스를 넣은 전개. 이 작품은 로맨스를 넣지 않고 청춘 드라마로 이끌고 나갔어도 충분히 매력적, 아니 지금보다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로맨스를 욱여넣다보니 중후반부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당혹스러웠다. 아무래도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라고는 짐작하지만 좀 많이 아쉬운 부분. 가령 동일한 사안의 해석의 차이나 약간의 엇갈림만 부여해도 마지막 장면의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굳이 그런 선택을 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인공인 사카가미는 좀 아쉬웠는데, 아쉬운 점이 바로 사카가미의 행동 변화는 전적으로 준의 동경에 있다는 점이다. 다이치는 준의 모습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서 행동하는 것에 반해 사카가미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준을 동경하다보니 주위 상황에 이끌려서 문제를 해결해버렸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다. 또한 후반부에 사카가미는 사실 완성된 인간상을 보인다는 점도 조금 NG. '부족한' 캐릭터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다가 갑자기 완전한 인간상이 나오고 거기서 다른 사람의 성장을 이끌어 낸다는 점이 좀 당황스러웠다. 이 이야기가 '나루세 준'의 이야기라면 나쁘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라면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
종합하자면 작화도 괜찮고 연출도 나쁘지 않은, 음악의 경우 최근 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퀄리티를 보여주었고 주제와 이야기도 괜찮았던 훌륭한 작품이다. 솔직히 중후반부의 전개와 결말의 행방만 아니었더라도 거의 퍼펙트했다고 이야기했을거다. 특히 테마인 <말의 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말의 날카로움, 말의 부드러움을 모두 표현해내었다는 점. 그리고 모두가 가슴에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말하지 못 했던 말'을 톡톡 건드리는 점. 말로 끊어지려 하는 관계, 말로 이어내는 관계. <관계>에 있어서 말이 가지는 무게감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눈물을 쏙 빼는 슬픈,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가슴의 한 켠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타인에 대한 다정함을 이끌어내는 좋은 드라마,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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