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올해를 가장 뜨겁게 달군 애니메이션을 하나 선정하라면 아마 누구나가 이 작품, <너의 이름은>을 꼽을 것이다. <초속 5cm>, <언어의 정원> 등으로 유명한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3년 만의 신작. 개봉 직후 일본 내에서 사회적인 현상마저 만들어내고, 연이어 역대 일본 영화 흥행 기록을 갱신하며 초고속 흥행가도를 달렸던 작품이다. 더군다나 일본 내외의 평론가의 찬사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작품인지라 국내에서도 많은 기대감을 낳고 선행 시사회의 경우 경쟁률이 극단적으로 치닫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작품이다.
사실 기존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의 경우, 그 팬의 수만큼 안티 팬도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강한 작품들이 많았다. 나의 경우엔 그의 작품 중 <초속 5cm>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그의 팬 중 한 명이었지만 주위에는 신카이 마코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늘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대중성 면에서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렇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이 작품은 '무난하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혹자는 이런 평가를 비아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전의 다른 감상들에서 이야기 한 적 있었지만, '무난하게 재미있다'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어려운 경지다. 특정 집단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은 그 집단의 기호에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호평을 이끌어 내는 것은 정말 많은 생각과 배려,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언제나 부족했던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이런 변화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관객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무난한 재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바로 소재에 있다. 그의 최근 작품인 <언어의 정원>과 <초속 5cm>는 둘 모두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전자의 경우 '만엽집'이라는 다소 코어 한 소재를 사용했고 후자의 경우엔 사랑 중에서도 첫사랑, 그중에서도 '첫사랑과의 실연'을 다룬 작품이다. 전자의 경우엔 익숙하지 않은 소재로 인한 불편함과 후자의 경우엔 감상자의 경험에 의해 감상이 크게 바뀐다는 불안정성을 갖고 있다. 반면 이 작품의 경우 '몸이 바뀐다'라는 이미 널리 사용되는 소재를 이용했고, 플롯 역시 독특한 부분 없이 평범했기 때문에 감상자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언어의 정원처럼 '무스비'나 '황혼의 시간'같이 일본 옛 문화와 같은 소재를 차용했지만 전작과는 달리 전면부에 배치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진행을 돕는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느끼는 데 큰 걸림돌은 되지 않았다.
인상적인 부분이 꽤 많은 작품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이 작품의 초반 부분이다. 이 작품의 초반 부분의 분위기와 템포가 너무나도 훌륭했다. '몸이 바뀐다'라는 내용을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나 학교생활과 같은 친숙한 소재로 표현해냈고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과 가볍고 즐거운 템포로 감상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에 몰입하게끔 만들어 두었다. 기존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시종일관 진지한 장면들뿐이라 이런 감상자를 '즐겁게' 만드는 부분이 많이 부족했는데 이번 작품, 이 초반 부분의 경우 내 안에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급 조절을 잘했다.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었다는 부분도 호평하고 싶은 부분이다. 과장 좀 섞어서 이야기하자면, 러닝 타임 내내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스쳐 지나가는 그 어떤 장면들도 모두 이야기에는 필요한 부분이었다. 특히나 흘러 지나가는 장면에 복선을 많이 설치해둔 작품이기 때문에 꼼꼼히 체크하면서 볼수록 더 깊이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부분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또 굉장히 놀란 부분은 '소품'을 이용한 복선이 많았다는 점. 어떤 소품인지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하지 않을 거지만, 주의 깊게 본다면 소품 선정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신카이 마코토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영상미 역시 여전히 훌륭했다.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오프닝 장면부터 클라이맥스 씬, 에필로그까지 러닝타임 내내 눈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이라고 하면 역시 누구나가 꼽을 클라이맥스 씬. 이 장면은 아마 앞으로도 '빛의 마술사'인 신카이 마코토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다.
정말 좋은 작품이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역시 존재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진 부분은 바로 중반 부분이다. 초반 부분의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하던 좋은 완급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전개가 급작스럽게 빨라진다. 특히나 한국 내외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는데 바로 이 부분으로 인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감정 선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나 이야기가 전혀 없다 보니 작품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감상자 스스로가 그 부분을 메꿔야만 한다. '사랑엔 이유가 없다'고는 하지만, 심경의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다보니 서서히 고조되어가던 초반의 감정선을 따라가던 감상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두 사람이 사랑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명확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살리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 이 부분에서 5분만 더 할애해서 두 사람의 감정 표현을 했더라면 두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평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편의주의적이었던 전개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중반 부분 이후의 이야기에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이 가미된다. '무스비'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고 복선을 충실히 설치해두긴 했지만, 복선들이 '이런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라는 복선이었지 이야기의 논리적인 개연성을 살려주는 복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연성을 충족시키기에는 좀 어려운 면이 있었다. 물론 감독 자체가 '개연성과 재미에는 별 관련이 없다'고 인터뷰를 할 정도로 개연성을 신경 쓰지 않는 감독이다 보니 당연히 발생할 문제였지만, 생각보다 이 부분에서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 감상자가 많기 때문에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무난하게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감상자에 따른 호불호가 적은 편이고, 웃음과 감동, 재미가 공존하고 있는 작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감상하더라도 '시간 낭비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작품일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었고, 이에 따른 한계점 또한 명확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아쉬움을 하나 더 적자면, 내가 좋아했던 신카이 마코토의 장점은 그 만의 개성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부분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겠다. <너의 이름은>이 더 잘 만든 작품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역시 <초속 5cm>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신카이 마코토는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간 것은 틀림없고, 그건 분명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큰 진보라고 생각한다. 그의 다음 행보가 더 기대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째서인지 울고 있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분명 꿈을 꿨었지만, 어째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를, 누군가를 찾고 있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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