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劇場版 鬼滅の刃 無限列車編, 2020)
예전에는 모든 감상하는 작품마다 감상을 남기려고 했지만, 일을 시작하게 된 이후에는 그럴 체력이 남아나질 않다 보니 내게 임팩트를 남기는 작품들만 감상을 남기기로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포스팅 주기가 굉장히 길어지게 되었는데, 드디어 그럴 기회를 만났다. 바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다.
사실 귀멸의 칼날은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만나게 되어 원작까지 읽게 된 케이스인데, 애니메이션 1화를 본 그 날 바로 코믹스를 전부 구매했던 것이 생각난다. 어찌보면 무색무취한 도입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무언가 가슴을 흔드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역시 틀리지 않았고 무한열차편까지는 정말 만족하면서 읽은 소년 만화였다. 이후 유곽편, 대장장이 마을편, 최종결전편으로 가면서 점점 망가져가긴 했지만 최근 점프 연재작들을 생각하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면 역시 무한열차편이었기 때문에 역시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작 팬에게는 정말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TVA에서도 원작을 한없이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준 유포테이블이었지만 이번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그 이상이었다. 아카자전에서 보여준 연출은 코믹스와는 완전 다른 작품을 보여주는 듯한 감정 전달이 있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원작과 비교하여 비판당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모습은 원작 초월 수준이 아닌 재창조의 영역에 가까웠다. 같은 플롯, 같은 캐릭터를 사용하지만 전해지는 감정의 밀도는 원작의 수십배는 될테니까.
최근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단연 두각을 드러낼만한 작품이다. 작화, 연출 등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받았던 부분은 역시 음악이다. 음악을 이용한 관람객의 완급 조절이 일품인 작품이었다. 본작 최대의 인기 캐릭터인 렌고쿠 쿄쥬로를 이미지한 테마곡 <불꽃>부터 시작해 원작에서도 히노카미 카구라씬의 감정을 극대화하는데 이용한 <카마도 탄지로의 노래>까지. 새로운 곡과 함께 그동안 사용해왔던 곡들을 어레인지하여 적재 적소에 잘 주입하여 감정을 극대화하는데 잘 이용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역시 아카자전에서 보여준 부분이었는데 감정이 작품에 잘 녹아나게끔 음악을 선정한 후 연출에 맞춰서 음악을 페이드 아웃, 페이드 인시켜 관람객의 호흡을 조절하던 부분이다. 이것이 매우 잘 드러난 장면이 「화염의 호흡 오의, 9형 연옥」을 사용하는 대목이다. 연옥을 시전하기 전까진 전용 테마곡으로 감정을 극대화 시킨 후 일격을 가할때는 그대로 음악을 페이드 아웃 시켜버렸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관람객은 침을 삼키며 숨을 잠시 멈추게 된다. 이런 일련의 자연스러운 유도가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더욱 살려 인상 깊었다. 물론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기는 하나 작품의 음악과 장면이 어우러지는 와중에 이런 기법을 사용하니 오히려 더 빛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원작의 주요 장면들─탄지로의 꿈 속, 렌고쿠의 회상 등─을 강렬한 작화와 음악, 그리고 연출을 이용해 원작 이상으로 잘 재현해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호평을 거듭했지만 역시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여러면에서 원작을 더욱 잘 살린 작품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이 더 나은 작품이 되는 것을 가로 막은 게 원작이었다는 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한계는 이 원작의 틀을 결국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원작이 존재하는 애니메이션의 딜레마인데, 원작을 충실히 재현할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어레인지를 더할 것인지 항상 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유포테이블은 대부분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그렇다보니 오히려 이 작품은 거기서 더 성장할 수 없게 되었다.
원작 <귀멸의 칼날>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면, 이 작품은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대사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최악으로 꼽는 방법이 뭐냐면, 그걸 일장 연설로 처리해버린다는 점이다. 원작이 이 방법을 선택했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극장판 애니메이션 역시 그 방법을 따라갔다.
예를 하나 들자면 원작에서도 좋아하지 않았던 대사 중 하나인 "난 나의 책무를 다할 것이다! 여기에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죽게 놔두지 않아!!"를 꼽을 수 있겠다. 렌고쿠의 신념을 잘 알 수 있는 대사이지만 그와 동시에 렌고쿠 쿄쥬로라는 캐릭터를 스스로 자기PR 해버리게 만드는 안타까운 장면이다. 사실 렌고쿠가 이런 대사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마지막 우부야시키의 대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렌고쿠의 노력과 업적의 위대함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간접적인 전달 방법이 오히려 관람객의 감정을 더 흔든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 아쉽다.
전반의 엔무 전에도 아쉬움이 남는데, 기차와 융합하면서 나온 3D 연출의 부실함 등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대목도 있지만 그보다 개인적으로 더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이 부분의 호흡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다. 코믹스에서는 워낙 전개가 빨라서 금방 넘어가다보니 별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영상화되다보니 이 부분이 지나치게 늘어진다. 그래서 사실 아카자전 이전만 해도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칭찬받지?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단점이 가장 크게 발한 부분이 바로 젠이츠, 이노스케의 꿈 이야기 부분이다. 원작에서는 도합 2~3페이지 정도로 짧게 지나가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원작에서는 탄지로 회상 씬에서 애절한 장면이 이 두 사람의 개그씬으로 전환되면서 맥이 끊긴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작중 인기 캐릭터이니 만큼 분량 조절을 위해 넣어야 한다는 점과 원작 재현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아니지만 역시 아쉽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런데도 큰 임팩트를 남긴 작품이다. 신파적 요소가 과하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탄지로의 꿈 이야기나 쿄쥬로의 신념, 그리고 어머니와의 대화 부분에선 빠짐없이 눈물을 삼켰다. 이런 전형적인 이야기에 약한 내겐 오히려 더 만족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이미 유곽편도 방영 확정으로 알고 있는데, TVA 2기도 기대된다.
힘이라는 건 비단 육체에만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이 소년은 약하지 않아. 모욕하지 마라.
몇 번이라도 말해주지.
너와 나는 가치 기준이 다르다.
나는 그 어떤 이유로든 도깨비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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