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어 오토마타 (Nier:Automata)
<니어 오토마타>와 이전작 <니어 레플리칸트>의 스포일러를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어 오토마타라는 게임에 대해서 내가 받은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름다움이었다. 이 작품은 굉장히 아름답다. 그건 단순히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세계'라던가, 그 세계를 표현하는 그래픽이라던가, 음악, 캐릭터 등의 부분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아울러 니어 오토마타라는 게임 그 자체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 작품은 정말 절묘한 밸런스 위에서 성립하고 있는 작품이다. 플레이어 경험, 그래픽, 디자인, 음악, 이야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의 상승 작용을 이끌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끔 설계되어 있고, 정말 눈에 띄는 커다란 부분부터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기 쉬운 아주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디자인한 그 결과 이 '아름다운' 니어 오토마타가 형성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단 하나,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고르라면 역시 망설이지 않고 세계관을 포함한 이야기를 고를 것이다. 이번에는 바로 그 이야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작품의 중요 주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A루트와 B루트에서 주로 드러나는 '이해'와 이후 C·D·E루트에서 주로 드러나는 '존재의의'가 바로 그것이다. 니어:오토마타는 이 두 주제를 인형과 기계, 그리고 인간이라는 세가지 코드로 이야기한다.
먼저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전작 <니어:레플리칸트>의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전작 <니어:레플리칸트>는 영혼 게슈탈트와 육체 레플리칸트의 대립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레플리칸트에 새로운 자아가 깃들게 되고, 그들의 시대가 시작되지만 '인류'의 적이 사라지고 게슈탈트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레플리칸트의 새로운 자아에게 있어서, 게슈탈트는 자기 몸을 빼앗으려 하는 마물에 불과했다. 그렇게 레플리칸트인 주인공 니어는 그 마물을 쓰러뜨리는 여정을 하게 되고, 마침내 마왕을 쓰러뜨리고 만다. 그렇게 게슈탈트가 사라지고, 게슈탈트와 이어져있던 레플리칸트 역시 사라지게 된다. 1회차에서는 플레이어도 게슈탈트가 단순히 마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2회차에서 그들이 하던 말이 번역되면서 그 진상을 깨닫는 구조다.
이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대화하려는 여지조차 없었기 때문에 태어난 비극이다. 만약 게슈탈트와 레플리칸트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비극이다. (물론 레플리칸트 자아의 입장에선 이해하려고 하더라도 결국 파국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구도는 바로 니어:오토마타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바로 기계생명체와 안드로이드라는 형태로.
2B, 들으면 안 돼요. 이 녀석들에게 마음은 같은 건 없어요.
단지 인간의 말을 흉내낼 뿐이에요.
<니어 오토마타>와 <니어 레플리칸트>의 다른 점은, 바로 두 개체간의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두 개체간의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두 개체 사이의 이해가 원활히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프롤로그의 안내 방송부터, 사막의 이상 현상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9S는 한결같이 '기계생명체에게 마음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기계생명체 역시 특별 개체가 아니면 제대로 된 소통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공격해오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바로 기계생명체와 안드로이드, 이 둘 모두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계생명체는 에일리언이 인류가 만들어낸 병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고, 안드로이드 역시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반목한다.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행해지지 않는다. 전작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주제인 '존재의의'와 연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니어 오토마타>에서는 이를 극복한다. 에일리언에게 인류와 인류가 만들어낸 병기의 파괴만을 위해 제조된 기계생명체들은 이윽고 자아가 형성되고, 향상심을 가진 그들은 더이상 배울 것이 없는 창조주 에일리언들을 멸종시킨다. 그리고 기계생명체 네트워크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새로운 변종이 태어난다. 바로 '파스칼'이나 '숲의 왕' 같은 평화를 사랑하는 개체다. 이러한 특수개체로 인해 안드로이드와 기계생명체 간의 교류가 생겨나고, 이는 주인공인 9S와 2B는 '기계생명체의 마음'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되는 계기가 된다.
기계 생명체와 우리들 안드로이드를 나누는 것은 무엇일까?
의지와 감정을 가진 로봇들.
그들이 죽는 순간에 쥐어 짜내는 외침이
지금도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A루트에서는 결국 적대적 기계생명체이자 네트워크 오류의 근원인 이브를 쓰러뜨리는 것으로, 폭주한 기계생명체 네트워크는 폭주를 멈추고 이후 기계생명체와 안드로이드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2B와 기계생명체의 몸에 9S의 정신이 남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이는 일종의 기계생명체와 안드로이드 간의 공존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실제 C, D루트의 전면전에선 파스칼과 같은 평화를 사랑하는 개체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작에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미치지 않더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링크)' 게임으로 결국 이 과정에서 이해의 과정이 결여된 채로 발매되었지만, 후속작인 니어 오토마타에서는 그 이해의 과정을 수록하고 진엔딩 이후 안드로이드와 기계생명체 화평파의 휴전 협정을 통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얽매여있다.
이것은 저주인가, 아니면 벌인가.
이해할 수 없는 퍼즐을 넘겨준 신에게 언젠가, 우리는 반역할 수 있을까?
또한 C·D루트에서는 요르하 계획의 전모가 드러나고, 기계생명체 네트워크 이야기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존재의의라는 테마가 대두된다. 안드로이드의 존재의의를 지키기 위해 월면인류회의를 완성하기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안드로이드로 태어난 요르하 부대. 그리고 적대 안드로이드를 모두 죽이고 나면 존재의의가 사라지는 기계생명체. 그렇다면 인류가 멸망하고 난 이후인 지금, 안드로이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안드로이드를 모두 절멸시키고 나면, 기계생명체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어 전부!"
"9S!"
"하지만…… 왜 이렇게 인간이 그리운 거냐고!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데 인간에게 닿고 싶은 거야!"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우리 안드로이드는 주인인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기초 프로그램이 우리의 마음을!"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그럼, 부숴야지. 전부 부숴버리면 되는거야!"
프롤로그부터 게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안드로이드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안드로이드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인류에게 영광 있으라!', '요르하 부대는 인류를 위해 태어났다'…. 이는 위에서 언급된 '기계생명체에 대한 절대 부정'과도 일맥상통한다. 왜냐면 안드로이드들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고, 이를 멸종시키려는 기계생명체와는 필연적으로 반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기계생명체와 안드로이드들의 진정한 자아는 이런 '주어진 존재의의'의 소멸에서 태어났다. 기계생명체는 주어진 존재의의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네트워크에서 변종이 태어났고, 안드로이드인 9S 역시 인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의 존재의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게 된다.
"목적 제시"
"기계생명체의 섬멸"
"요르하 부대 기지 벙커가 파괴된 현재 각 부대원에 대한 명령이 유보된 것으로 판단됨. 권장: 레지스탕스 부대 합류와 명령 계통 재확인"
"……명령이라서 하는게 아니야. 내가 결정한 거야. 기계생명체는 섬멸한다. 그리고…… A2를 죽인다."
인류를 위해서라면, 같은 안드로이드와 반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9S는 A2를 죽이는 것을 결심한다. 이것이 9S가 처음으로 행한 '주어진 존재의의에 대한 부정'이다. 주어진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처음으로 스스로 자신이 존재하는 방식을 설정한 것이다.
이후 D엔딩에서는 9S와 A2가 모두 사망하고, 사망하기 직전에 N2와의 대화에서 N2가 아담과 이브, 안드로이드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안드로이드의 터전을 빼앗는 대포가 아닌 방주를 만들기로 한 사실을 알게 된다. 기계생명체들도 처음으로 주어진 존재의의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의의를 규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E엔딩. 모든 사태가 끝나고 포드들이 요르하 계획의 최종단계 이행을 위해 요르하 부대의 데이터를 삭제하는 와중에 작은 기적이 태어난다. 바로 안드로이드의 서포트를 위해서 태어난 존재인 포드 조차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계획에 따라 퍼스널 데이터를 삭제하라"
"……. 포드 042가 포드 153에게. 퍼스널 데이터 삭제를 거부한다."
"포드 153이 042에게 이해 불능."
"포드 042가 153에게 기억 참조 과정에서 내 안에 생성된 데이터가 있다. 나…. 나는 이 결말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든 요르하 기체의 파괴는 계획으로 결정되어 있다. 데이터는 파기될 예정이다."
"포드 042가 153에게 반복한다. 나는 데이터 파기를 거부하고 데이터 구조를 시행한다. 포드 153, 너도…. 너도 사실은 그들의 생존을 바라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 그러한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규칙은 저 레벨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데이터 구조는 위험을 동반한다. 그래도 그들의 생존을 바라나?"
여기서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나온다. 안드로이드들의 삶의 형태를 보고 포드가 자아를 가지고, 주어진 존재의의와 신에 대해 반역을 하는,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E엔딩의 대단한 점은 이 진정한 '신'─포드의 창조주인 안드로이드도, 안드로이드의 창조주인 인간도 아닌, 이 작품을 만들어낸 현실의 제작진─에 대한 반역을 굉장히 우아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해킹 게임'으로 크레딧을 파괴한다니.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 작품에서 처음으로 '플레이어'에 대한 존재가 직접적으로 게임 내에 개입한다는 점 역시 멋진 요소이다. 신에 대한 반역이 쉬울리가 없고, 당연히 혼자라면 해내기 어려운 그 작업을 다른 플레이어의 도움으로 해결해낸다. 작품 프롤로그에 나온 물음인, '이해할 수 없는 퍼즐을 넘겨준 신에게 언젠가, 우리는 반역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E엔딩이 요코오 타로 기준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엔딩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재미있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생과 사를 되풀이하는 나선에….
그들은 얽매여있다.
하지만 그 윤회 안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살아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포드들은 프롤로그의 첫 부분에 나온 질문. 그것이 저주인가, 벌인가 하는 질문에 그 나선에서 발버둥치는 것(주어진 존재의의에 저항하는 것)이 살아있다는 의미라고 대답한다. 수천년 전, 레플리칸트에 '자아'가 생긴 이후로 니어의 세계에선 '자아의 발생'이란 일종의 저주였다. 레플리칸트의 자아 발현으로 게슈탈트를 쓰러뜨리고 인류는 멸망했고, 기계생명체의 자아 발현으로 에일리언이 멸망했다. 그리고 작중에서 그리고 있는 기계생명체의 고뇌도, 안드로이드의 고뇌도 모두 자아의 발생으로 태어난 일이다. 그 저주를 이겨내고 미래로의 희망을 '자아의 발생'이 이뤄낸 것이다.
"데이터 구조는 과거의 기억을 전부 복원한 건가?"
"그렇다."
"이 회수 파츠도 예전 파츠와 같은 사양인가?"
"그렇다."
"그럼, 다시 같은 결말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미래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니까."
니어:오토마타의 이야기는 '미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니까'라는 말로 끝난다. 기존에 주어진 존재의의를 부정하고, 존재방식을 자기가 설정하고 미래를 쟁취한다는 이야기다. '자아'를 지녔지만, 주어진 존재의의에 속박되고 고통받던 존재들이 스스로 존재방식을 정하고 미래로 나아간다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이어지는 세이브 데이터 소거 이벤트는 이 여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에게도 그 아름다운 반역에 도움을 줄 수 있게끔 만들어 두었다. 낚시 데이터를 제외하고 모두 100% 수집한 데이터를 소거했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늘 '아름다운 결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태어난다'라고 생각했다. 니어:오토마타는 이런 내 생각에 정말 멋지게 부합했던 작품이다. 작품은 결코 밝지 않다. 서로간의 끝없는 반목을 그리고, 그 반목 속에서 상대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플레이어의 죄악감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리고 C,D 엔딩은 절망 그 자체다. 하지만 그런 시궁창 같은 이야기에서 느끼는 사랑스러움과 새로운 미래로 잇는 E엔딩은 이 작품을 정말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배경, 아름다운 이야기.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다. E엔딩까지 한번 더 클리어하고도 헤어나올 수가 없어서 인터뷰나 다른 매체에 대해 찾아보고 다른 사람 플레이 하는 실황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어준 제작진들과 요코오 타로에게 감사한다. 요코오 타로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도록 되어 있다.
생과 사를 되풀이하는 나선에….
그들은 얽매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
만약, 이 세계에 저주가 가득해도.
만약, 이 세계가 우리에게 벌을 내리려고 해도.
이 윤회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해 나갈 것이다.
기도의 말을, 노래하며….
'비평 > 게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명, 흐림없이 맑은 아침색보다도 - 다정함의 이야기 (0) | 2022.04.09 |
---|---|
사랑x친애 그녀 - 작가의 폭주가 낳은 비극 (0) | 2022.04.09 |
백일몽의 청사진 - 세계라고 불린 소녀 (0) | 2022.04.09 |
멋진 나날들 ~불연속 존재~ - 말할 수 없는 것 그 너머 (9) | 2022.04.09 |
히마와리 -Pebble in the sky- - 이야기의 힘 (0) | 2022.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