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의 청사진 THE GIRL WHO'S CALLED THE WORLD (白昼夢の青写真, 2020)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개성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는 우리들 하나 하나가 오늘날까지 살아온 기억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무언가의 판단을 내릴 때,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한다.
그리고 몇 가지의 판단의 나열이 행동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과거의 경험, 기억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보는 것으로 그 사람의 개성을 판단한다.
즉, 우리는 간접적으로 상대의 개성의 집합을 개성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 인식의 연쇄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나로부터 보이는 세계의 모습, 당신들로부터 보이는 세계의 모습.
개개인을 잇는 공통 인식의 집합이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푸르고 투명한, 하늘과 경계도 희미해져버린 바다.
세계에 살고 있는 그 누구나가 바랐던 이상의 집합이 이 바다를 낳고 있다.
온 세상의 사람들이 꿈에서까지 그렸던 바다. 그것이 네가 보고 있는 바다다. 그러니 매우 예쁘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한 소녀의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계속 이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그러한 존재가 되기로 스스로 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인식의 연쇄 안에 있으면서도, 스스로가 있을 모습을 정할 수 있다.
그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그 소녀였다.
그 소녀의 이름은 요나기.
이것은──세계라고 불린 한 소녀의 이야기다.
오타쿠를 계속하고 있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마치 교통사고처럼 치명적인 흔적을 남기는 작품이 있다.
<백일몽의 청사진>은 그런 작품이다. 오타쿠를 그만둘 수 없게끔 만드는 그런 치명적인 한 방. 그걸 가진 작품이 이 작품이다.
프롤로그부터 세계라고 불린 한 소녀를 언급하며 기억과 행동, 그리고 인격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기억에서 비롯된 행동의 정의. 행동에서 비롯된 개성, 인격의 정의. 나아가 그 인격들의 집합으로 구성된 세계의 정의. 대체 이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런 거창한 프롤로그를 내던졌을까?
이 작품은 크게 2단계로 구성된다. Case 1, 2, 3으로 진행되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전반과 진엔딩으로 불릴 수 있는 후반.
에로게에서 대부분의 시나리오 게임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진엔딩을 갖고 있다. 한 방 커다란 무기를 갖고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 이 구성에 큰 불만은 없지만 이 구성에 치명적인 단점은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진엔딩 이전의 이야기들이 모두 빛을 바래버린다는 점. 초반에 지루한 이야기를 나열하다 후반에 몰아치는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고 더 심한 경우에는 진엔딩으로 이 전의 이야기를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작품까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너무나도 큰 강점을 갖고 있다. Case 1, 2, 3으로 분류되는 에피소드들이 너무나도 재미있는 나머지 진엔딩을 집어삼키려는 매력을 갖고 있고, 나아가 진엔딩 이후에도 이 에피소드에 의미가 부여된다. 작중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 요소들이 이 작품을 이루는 근간이되고 이 작품 그 자체가 된다. 이러한 구성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마치 게임 4개를 연달아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플레이어에게 안겨준다.
전반부의 옴니버스식 구성을 굉장히 잘 이용하고 있는데,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Case 1의 경우 인생의 막다른 길에 몰린 두 사람의 추악하면서도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Case 2의 경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자아내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사람의 간절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Case 3의 경우 한 여름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두 사람의 성장을 그려낸다. 셋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동등한 매력을 갖고 있어서 처음 플레이할 당시엔 이 세 가지 이야기를 만난 것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고 스스로 평가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퀄리티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진엔딩 이후의 전개다. 앞에 있는 이 세 가지 이야기를 모두 묶어버리고 그걸 집어 삼켜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로 승화시켜버린다는 점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모든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모든 것들이 마지막에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연스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감히 100점짜리 구성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세계로 불린 소녀'라는 테마 역시 굉장히 매력적이었는데, 이러한 테마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떠한 주제 의식을 일깨운다거나 하진 않지만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가슴 속에 한 켠의 아련함을 안겨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줄 수 있었다. 소녀와 세계라니, 그야말로 오타쿠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테마의 조합일 수 밖에 없다.
플레이하는 내내 100점짜리 작품이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조금 아쉬운 점은 남았다. 이 작품의 강점 중 하나는 모든 복선을 깔끔하게 회수했다는 점인데, 오히려 그게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아주 작은 소재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작품 후반부에 본 테마에서 상당히 거리가 먼 요소 하나를 길게 설명해버리면서 이야기가 조금 꼬인 느낌이 있다. 체호프의 총에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전체 테마를 자칫하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큰 문제였는데, 다행히 이후 엔딩에서 제대로 수습을 해서 작품에 큰 흠결은 남지 않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고평가하기에 적합한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몰입감 있고 재미있다는 점은 분명 큰 강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테마를 잃지 않고 끝까지 그걸 완성해냈다는 점.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도 진엔딩 이외의 모든 이야기조차 다시 아름다워진다는 점이 다른 작품에선 맛보기 힘든 이 작품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라플라시안의 다음 행보가 더 기대된다.
부디 구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아름다운 세계를 사는 당신들 자신의 입으로.
일찍이──. 세계라고 불린 한 사람의 소녀가 확실히 있었던 것을
스포일러 감상 읽기
거기에는 내 모든 것이 쓰여 있어.
처음엔 슈보에 대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버지와 마주볼 수 없는 네게, 내가 그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슈보를 알게 되고 그걸 그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은 네가 이미 죽고 사라진 슈보를 어떻게 생각할 지에 달렸지.
거기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어. 아니 그 누구도 들어갈 틈이 없지.
네게 혼냈던 것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온 셈이야.
그런데도 나는 너를 위해 뭔가 하고 싶었어.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고 싶다고 여기까지 강하게 바랐던건 처음이야.
내가 슈보를 그려도 그건 모조품에 지나지 않겠지만──. 자기 자신이라면 쓸 수 있어.
아니, 지금의 내겐 자기 자신 밖에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한 사람의 인간이──.
너를 미칠 듯이 사랑하고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썼어.
네가 그것을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인간을 그리는 것이──.
자신이라고 하는 인간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거야.
네가 내게 요구하고 있던 건 다른걸지도 몰라. 하지만 나 자신은 그걸로 구해졌어.
죽음의 늪에서, 기어올라올 수가 있었어. 보기 흉했지만.
Case 1에서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웠던것은 역시 테마와 분위기다. 항상 진정한 아름다움은 저속해진 나머지 밑바닥에 가라 앉아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개인 지론상 이런 질척질척하고 한없이 침전하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역시 하타노 슈보와 동일화된 나머지 자살 시도까지 가버렸던 그 장면. 그리고 그걸 구원하는 것이 다름 아닌 린의 전갱이 석 장의 사진이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거기에 린이 보여주는 요염함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플레이하는 내내 심장을 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그 안에서도 린의 요염함은 더 빛났던 것 같다. 초반부에 아무렇지 않은 대화에서부터 풍겨나오더니 후반부에 가서는 대사까지 어우러져서 언터쳐블이 되어버리기까지.
이 앞, 그 어떤 결말을 맞이하더라도──.
이 만남을 원망하는 일은 없다.
두 사람의 시간은 분명히 있었으니까.
우리는 그것을 세계에 새겨버렸다.
그것은 이렇게, 로미오와 쥴리엣의 이야기의 형태로 바꾸어.
영원히, 나와 올리비아의 만남은 영원이 된다.
Case 2에서의 매력은 역시나 역사 속 셰익스피어의 일화를 그의 작품을 통해 그려낸 것. 그의 작품의 문학적 가치는 로미오와 쥴리엣보다는 4대 비극에서 더 주목받지만, 올리비아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에는 역시 로미오와 쥴리엣이 가장 잘 어울렸다. 특히 인상적인건 두 사람의 만남을 이야기로 써 그것을 영원으로 남긴다는 테마. 로맨틱함의 절정이다. 함께하고 싶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대목이었다.
이 이야기에선 사실 히로인인 올리비아보다 주인공인 윌에게 마음이 더 갔다. 올리비아 역시 매력으로 넘쳐 흘렀지만 결국 이 극을 완성한 건 역시 윌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나만이 너를 여배우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카타르시스까지. 에피소드 셋 중에선 주인공이 가장 마음에 든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칸나 군도 카메라맨이 될 거니까 어디선가 친구가 될지도 모르잖아?"
"………."
"?"
스모모는──.
내가 카메라맨이 된다고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마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스모모."
"응?"
"나도 카메라맨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헤?"
스모모는 이상한 것 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응시했다.
"될 거 아니었어? 된다라고 했잖아? 어떤 의미야? 될 수 있다던가 없다던가, 카메라 맨은……."
나는 조금 웃어버렸다. 확실히 듣고보니 그렇다.
스모모는 스스로 자기를 바보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깨닫지 못한, 솔직한 지름길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것을 생각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내 가슴을 울린 것은 역시 Case 3. 소년의 성장은 언제나 옳다. 특히 스모모의 매력이 너무나도 눈부신 작품이었는데, 바보라고 하면서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인생의 진리를 궤뚫는 모습은 역시 반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더 멋진 부분은 소년의 성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의 여름의 추억으로 두 사람 모두가 더 나은 성장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엇갈리지만 그것이 더 큰 성장을 위한 이별임을, 그리고 다시 같은 길 위에서 만난다는 이 컨셉은 언제봐도 사람을 울리는 그런 맛이 있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역시 이마에 키스하는 장면. 이건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한 감동을 받았다. 예전부터 연상을 좋아하던 내가 그려왔던 이상적인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한 여름의 추억으로 성장하는 주인공과 그걸 계기로 자신의 길을 찾는 히로인. 이것이 이별이 아닌 다시 만나기 위한 여정이라는 점이 특히 별 100개를 주고 싶었던 부분이다.
"……카이토라면 말이야."
"……응?"
"분명 언젠가 좀 더 대단한 걸 만들 수 있어."
"……좀 더 대단한 것?"
"응, 무엇인가…… 사람을 웃는 얼굴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
"카이토라면 분명 만들 수 있어!"
"……응."
"그러니까 울음을 그쳐, 카이토."
그리고 대망의 Case 0. 사실 이 즈음부터 어렴풋이 이 작품의 구성에 대해 눈치채고 그게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들떴었다. Case 0의 긴 이야기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역시 전반부 유년기. 소꿉친구는 항상 옳다는 개인적 지론에 걸맞는 장면들의 나열이었다. 두 사람의 이해도가 깊어지기 위해선 역시 긴 시간이 필요하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건 역시 소꿉친구다.
Case 0에 있어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전의 Case들을 없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걸 자연스럽게 Case 0 안에 녹여 내는 부분이었다. 이전 Case 들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이 모두 Case 0에서 다시 재현된다. 왜냐면 그건 요나기의 이야기니까. 어린 시절 요나기가 카이토를 달래기 위해 이마에 키스하는 부분에서는 이전 스모모와 칸나의 이야기가 떠올라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대목이다.
거기다가 어머니의 최후와 요나기의 능력에 관한 부분 역시 백점짜리 에피소드. 너무 뻔한 장면이었는데, 그래도 당할 수 밖에 없는 마력이 거기에 있었다. 전반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카이토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냐. 내가 나인채로 죽어간다면 카이토는 분명 마지막까지 내 곁에 있어주리라 생각해. 그렇지만, 그 때 카이토의 곁에 있는 건 내가 아냐. 내가 말하는 걸 알겠어?"
나는 천천히 수긍했다.
뇌와 기억의 일을 쭉 연구해 왔다.
기억 장해의 말기에 사람이 어떻게 될까.
그 증례도 조사했던 적이 있다.
자아가 어디에 머무는 것인가──.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개성을 판단하는 것인가──.
기억이다. 사람의 기억에야 말로 인격이 머문다.
그것이 없어졌을 때, 그 그릇에 들어가 있는 정신은 누구의 것인가?
요나기가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사라진 뒤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요나기인가?
그 대답은 지금 낼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나는 말이야──. 그 순간이 되어도 나는 자신이 어떤 길을 더듬어 왔는지, 이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내고 싶은 거야. 그것이 내가 주는 그녀를 향한 편지야. 그러니까──."
요나기는 책상 위의 노트를 향하던 시선을 내게 향한다.
"이별의 이야기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중반부부터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가 드러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여기서 세 가지 이야기의 존재 의의와 그것의 결말에 대한 이유까지 설명하는 점이 너무 훌륭했다. 모든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 자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다. 이야기에는 필요 없는 부분이 하나도 없을 수록 아름답다. 요나기는 무슨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써내려 갔는가. 그리고 어째서 그런 결말을 낼 수 밖에 없었는가. 그 모든 것들이 한번에 명쾌하게 설명되는 지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두 사람이 결별하고 다시 하나가 되는 부분 역시 이 작품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정해진 결말을 알면서도 한정된 시간을 두 사람이서 보내기 위해 결심하는 주인공 역시 멋있었던 부분. '기억력만이 특기니까.' 부분에서는 남잔데도 반했다.
이 지하의 거리에서도 자그마한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만이 기초 욕구 결핍증에 걸린다.
후반부부터는 조금씩 아쉬운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기초 욕구 결핍증. 이거 소재 하나만 따로 떼서 작품 하나 만들면 그것만으로도 폭풍 감동으로 만점짜리 작품 하나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이 작품에 넣는 것은 역시 과유불급이었다. 이건 필연적인 글쟁이의 욕심으로 생긴 문제인데, 마음은 이해한다. 어머니의 사망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하지만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동안 작품의 큰 주제에서 크게 탈선한다는 부분은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부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자외선보다 기초 욕구 결핍증으로 세계관을 짜올리는 것이 훨씬 아름답긴하다. 하지만 이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요나기의 희생을 설명해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걸 굳이 이 작품에 넣은 점은 분명히 아쉽다. 소재 자체는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소재이기 때문에 차라리 차기작으로 냈더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나 충족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만이 죽어간다는 설정, 얼마나 매력적인가. 너무 아쉽다.
"카이토. 내가 결정하게 해 줘. 나는, 당신의 손으로 모두의 세계가 되고 싶어. 나는 그 역할에 내 생명을 바치고 싶어."
요나기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가슴에 머리를 맡겼다.
"당신이 요구한 내가 되지 못해 미안해. 항상 응석만 부려서 미안해. 당신이 준 시간은 정말 온화하고 다정해서──. 지금도 내 안에 계속 남아 있어. 그것이 나에게 있어 먼 기억이더라도, 그 따스함 만큼은 알아. 카이토와 함께 본 그 꿈이, 지금 나를 계속 이어주고 있는거야."
"……요나기."
"카이토, 내 손을 잡아 줄래?"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카이토는─."
우리를 둘러 싼 흙의 벽이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 뿐.
노란 꽃은 지평선의 저 너머까지 활짝 피어 바람에 그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살아줘. 어디까지나 하늘이 퍼지고, 카이토를 감싸는 바람이 부는 이런 세계를. 당신은 살아줘."
"……."
요나기의 사고 공간 안에 우리는 서 있었다.
바람에 날린 꽃잎이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그 노란 꽃잎의 저 편에 새하얀 구름이 낙낙하게 흐른다.
"예쁘지? 모두에게 보여 주자. 이 지하에서 괴롭게 살아온 모두에게 우리의 힘으로 이 하늘을 보여 주자. 이 바람을 가르쳐 주자. 그것이 모조품의 세계더라도─. 그것이 단지 한 때의 꿈일 뿐이더라도─."
요나기의 마음은 정해졌다.
나는 그걸 깨달았다. 요나기는 결단한 것이다.
이렇게 약한 소리 밖에 내지 못할 만큼 몰리면서도 그런데도 요나기는──.
스스로가 어떻게 있을 지를 결정했다.
자신의 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결정했다.
이젠 나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목이 괴롭다. 숨이 막힌다.
그런데도── 요나기에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나기 안에서 계속 말할거야. 이 하늘은──. 이 바람은──. 지금은 세계로 불리게 된 한 소녀가 진심으로 바라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나는 그 공간에서 계속 말할거야. 나는──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거야."
"……이제 소녀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야, 나."
"내 안에서 요나기는 언제나 소녀야. 만났을 때부터 오늘까지, 쭉."
"……응."
우리는 그 드넓은 초원에서 서로 몸을 기댔다.
"마지막은── 카이토의 손으로 보내줘."
"응."
"분명 그걸, 내가, 내 안의 기억이─.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응…."
"마지막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떠나고 싶다고, 그 아이는 분명 생각할테니까."
"알았어."
"웃으면서 작별하자."
비록 결점은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의 엔딩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 자칫 잘못하면 이야기의 주제가 이탈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에 봉합하는 부분이 압도적이었다. 작품의 테마인 세계라고 불린 소녀와 그리고 그걸 구전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구조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야기 내적인 아름다움도 너무 빛났다. 바다를 의미하는 카이토와 파도가 그친 잔잔함을 의미하는 요나기가 함께 만들어낸 결말. 기억을 모두 잃더라도, 그걸 넘어서려고 하는 두 사람의 마음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그리는 결말은 최근 몇년 동안 만난 작품의 결말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무언가 사람을 매료시키는 메시지는 없어도,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분명 있다. 내게 있어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작품. 내 감정을 쥐고 뒤흔들어대는 작품. 책장을 덮을 때 한껏 후련함과 아련함이 동시에 남는 그런 책과 같은 작품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디 구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아름다운 세계를 사는 당신들 자신의 입으로.
일찍이──.
세계라고 불린 한 사람의 소녀가 확실히 있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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