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이 하는 일(りゅうおうのおしごと!)
세상에는 다양한 이야기의 형태가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감동을 추구하는 작품도 있다. 또는 교훈을 주거나, 사회 문제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들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따로 있으며, 보통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이 중 한 가지에 매진하기 마련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있듯, 목표가 너무 많으면 이를 달성하기도 어려운 데다 최악의 경우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아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서브컬쳐에서는 이야기 형태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처음엔 잔잔하지만, 후반에 몰아쳐서 감동을 이끌어 내는 타입의 이야기. 혹은 '재미'에 올인하여 이야기의 큰 줄기보다는, 순간순간의 재미를 추구하는 이야기. 이 두 이야기에는 저마다 장단이 있다. 전자는 후반에 큰 감동을 주더라도 초반에 독자나 플레이어를 작품에 몰입시키기가 어렵고, 후자는 그 순간순간의 재미가 반복되다 보면 결국 일종의 패턴화가 되고, 이로 인해 그 재미가 끝까지 이어지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더 좋은 이야기'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둘의 장점을 규합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지만, 감동도 줄 수 있는 이야기. 말은 간단하다.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를 해내는 작품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보통 이런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좋은 작품으로 칭송받는다.
바로 이 작품, <용왕이 하는 일>이 그렇다.
<용왕이 하는 일>의 이야기는 16세, 사상 최연소 일본 장기 타이틀 '용왕'의 보유자인 쿠즈류 야이치와 그런 그의 장기에 매료되어 장기를 배우기 위해 9살 어린 나이에 홀로 스승을 찾아온 히나츠루 아이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을 펼치고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다른게 아니라 그냥 '재밌다'는 것이었다. 작가 시라토리 시로의 전작 <농림>에서 보여주었던 코미디 센스를 그대로 다시 보여주고 있다. 전작 <농림>의 경우 다른게 아니라 순수하게 '코미디'의 힘으로 돌풍을 만들었던 작품이니만큼 작가의 코미디 센스는 매우 뛰어나다. 사실상 이야기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인 첫머리부터 이 작품은 웃음을 주었다.
개그의 배치도 적절해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5권까지 한꺼번에 구입했는데도, 그냥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정도로. 이런 '재미'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진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이 작품의 큰 줄기는 '성장 드라마'라는 점이다.
이길 수 없어도 괜찮아.
오히려 졌을 때 분명하게 '졌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렴.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곤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한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이는 이 모두가 제각각 성장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부분의 성장 드라마는 보통 주인공을 기준으로 두기 마련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서 배움을 얻고 점점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다. 이 작품은 '모두가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압도적인 재능으로 최연소 타이틀 보유자지만 젊은 나이로 멘탈이 약한 야이치. 작중 최고의 재능을 지녔으나 9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로 부족한 점이 많은 아이. 장기를 정말 좋아하지만, 재능이 부족해서 더 나아갈 수 없는 케이카. 최고의 여류기사로 인정받지만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에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긴코.
이 작품은 이들 모두가 성장한다.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을 안고서 방황하고, 노력하고, 좌절하며 조금씩 조금씩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런 저마다의 성장을 서로 지켜보며 다른 캐릭터들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도움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도움을 주고, 받는. 홀로 강해지거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있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모두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런 성장 드라마는, 수수하지만 강력하다. 느리지만, 확실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캐릭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응원하게끔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부족한 것을 세는 것은 그만두자.
타인보다 내가 뒤떨어지는 이유를 찾는 일도.
적의 수를 세는 것보다, 응원해 주는 사람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
분하지만, 굉장히 분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내가 부정당하는 것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을 부정하게 두고 싶지는 않다.
나를, 이런 모자란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의 마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노력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힘을, 재능을 믿을 수 없어도.
마지막, 그 끝까지 이기는 것을 단념하지 않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최고의 성장 드라마의 자격을 지닌 줄기. 그리고 여기에 독자를 웃게끔 만드는 재미있는 많은 장면들의 가지. 그리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잎.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강하다.
<이 라이트노벨이 대단해!> 17년 1위는 결코 허명이 아니다. 이 작품은 재미있다. 그리고 감동 또한 있다. 재미있는 작품의 장점도, 감동적인 작품의 장점도 모두 규합한 이 작품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장 드라마의 특성상, 1권보단 2권이. 2권보단 3권이. 뒤로 나아갈수록 이야기의 매력은 더더욱 증가한다.
5권에서 한 번 기점을 만들었다. 작가는 원래 5권에서 이 작품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지만, 독자의 사랑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지, 그 자취를 계속 좇고 싶다.
20세의 나에게.
20세의 나는 그 꿈을 이뤘습니까?
10세의 나에게.
25세의 나는, 지금도 그 꿈을 계속 좇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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