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상자와 제로의 마리아 (空ろの箱と零のマリア)
'광기와 순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 작품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이 작품의 소재는 '사랑'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 사랑을 표현해낸다. 누군가는 관심을, 누군가는 희생을, 누군가는 등가교환을. 이 작품은 그 사랑의 광기와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광기와 순수의 본질은 같다. 오로지 그 대상을 향한 무한한 추구가 광기와 순수의 본질이다. 둘은 같은 방향을 놓고 추구하는 방법만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광기와 순수는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그 어떤 광기도, 순수도 약간만 관점을 달리하는 것으로 역전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작품은 그 둘 모두를 표현해내며 마침내 그 '종이 한 장'의 간극을 지나가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트위터 친구에게 추천받은 작품이고, 완결권이 정식 발매가 될 때까지 기다려왔던 책이다. 마침내 완결권이 발매되고 1권을 다 읽었을 때 솔직히 실망했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절찬을 들을 만큼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추리, 미스터리적 요소는 훌륭했고 캐릭터의 매력도 좋았다. 서사도 나쁘지 않았고. 하지만 중요한 알맹이가 없었다. 대체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이 작품을 좋아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이 3권부터 역전되었다. <쿠데타의 나라> 에피소드에 들어가면서부터 등장인물들의 변모가 시작된다. 각자가 믿는 신념에 따라 모든 것을 배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주제'를 제외하고 순수히 서술 트릭이나 반전만으로도 매우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고 몰입감 역시 어마어마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장르를 좋아해 끊임없이 이야기만 읽어온 나도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는 당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기 마련이었다. 이건 5, 6권인 은막 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지막 완결권에서 이 모든 감상이 뒤집어졌다. 7권은 앞선 이야기를 모두 잊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전까지는 '서사' 속에 주제를 감춰왔지만,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서사까지 부숴가며 표현해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놀라운 반전과 서술 트릭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는 이 작품을 읽는 모두가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마지막 이야기에는 빛을 바라게 된다. 전체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게 무슨 이야기야?'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작품은 읽고 있으면 그런 것 따위 아무 상관없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매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른 라이트 노벨과는 다르게 모두 상처투성이인 등장인물과, 잔혹한 이야기와 눈 뜨고 못 봐주는 배경, 오로지 상처뿐인 이야기였고, 파멸로 걸어가는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재생의 희망만큼은 끝내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더 빛나는 이야기. 역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추악한 곳에서 피어난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너무나도 지독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이, 스스로 상처 입는 것으로 밖에 상대방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그것으로 더 괴로워하던 아이들이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카즈키와 마리아 주인공 커플은 물론이고 코코네, 하루아키, 다이야의 삼각관계 역시 아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캐릭터들이었다. 특히 다이야의 경우 카즈키와 대비되는 제2의 주인공으로써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1권 '거절하는 교실'과 완전히 같은 상황을 재현해낸 7권 '불완전한 행복'의 구성은 수미쌍관과 대구를 동시에 만족시킨 인상적인 구성이었다. 더군다나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캐릭터의 상태는 '완전히 반대로 구성한 채'로 말이다. 이를 통해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나아가야 할 부분을 모두 표현해내었다. 완성되었던 마리아와 끌려다니는 카즈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같은 상황에서 헤쳐나가는 카즈키와 기다리는 마리아의 구도는 최근 본 라이트 노벨 중에서도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는 매우 인상적인 구성이었다.
이 작품의 멋진 점을 스포일러 없이 표현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내 한계가 너무 안타까운 작품이다. 파고들면 설정 부분에서 약간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점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이야기, 소재를 풀어내는 능력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작품.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봤으면 좋겠다. 아니 읽어주세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망치고 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아름답고도 흉측한 애정.
"피어스 달았네?"
은발의 내가 대답한다.
"어. 나는 피어스를 엄청 싫어하니까."
"그건."
코코네는 슬픈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구해 달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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